유럽/러시아

첫 해외 여행에 대한 오래된 기억

나무두그루 2011. 2. 25. 21:21







'처음'이란 언제나 특별하다.
기다림과 서툼, 낯선 경험에서 오는 강렬한 기억.
'러시아'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꺼내보기에 새삼스러울 만큼 오래되어 작은 기억들은 시간에 묻혔지만,
그곳은 세세한 설명을 필요치않는 하나의 이미지처럼 강하게 남아있다.
여행을 기다리던 설레임은 이제, 돌이켜 곱씹어보고픈 그리움이 되었다.

요즘 시간이 남아돌자, 갑자기 그때의 시간들이 머리속을 훼집고 다닌다.
게으름에 점령당하지 않는다면, 몇몇 이야기들을 적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옛 흑백사진을 훑어보듯, 너무 많이 달라졌을 그곳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자본주의에 밀려 소련이 해체되고, TV에선 늘상 가난한 그곳을 비추었다.
수급이 불안한지 먹을 것을 사기위해 몇 미터씩 줄을 서는 배고픈 사람들.
도심의 여러 사건들... 그 모든 것이 다 나쁜 사회주의 탓인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러시아에서 공부중인 외사촌 언니덕에 그곳에 가보지 않았더라면, 
실패한 사회주의의 잔상인 러시아... 정말 그것만이 전부인줄 알았을게다. 

그곳의 기억은 대한항공이 너무 비싸 끊었던, '아에로플로트'에서부터이다.
3주가 조금 넘는 일정동안 130만원 정도 썼는데 비행기 표값이 80이었으니,
큰 비중을 두고 선택했던 항목이었다. 낯설고 조금은 두려운 러시아 비행기.
6자리씩 배열되어 있는 크지 않았던 실내공간, 꼬질하게 때가 탄 내부 벽체.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뚱뚱하게 살찐 전혀 친절하지 않았던 스튜어디스이다.
예쁜 얼굴로 웃음지으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나라와 너무 달랐던.
물한잔 달라하니, 콜라캔에 컵을 얹어 2개를 연거푸 던져주다시피 확 놓는다.
이런, 내가 영어를 못하긴 하지만 "water"  발음도 안되는건가? 자신감 상실...   
보다못한 옆의 러시아 아저씨가 스튜어디스 아줌마에게 물한잔을 받아왔다.  

10시간쯤의 비행을 마치고, 모스크바 시내를 보며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한다.
건물로 꽉 들어차있는 서울과는 다른 푸른 나무 사이의 도심이 낯설다 느끼며,
비행을 끝내는 마당에 바보같이 그동안 불편했던 속을 게워내며 퍽 당황했다.

엄마가 언니 가져다 주라며 챙겨주셨던 음식들이 담긴 무거운 트렁크를 찾아
함께 여행에 나선 동갑내기인 언니 고모의 딸과 함께 입국장에 줄을 서있는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제복을 입은 공항직원이 친구를 따로 불러내
어디론가 데려간다. 짐을 지키고 서있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으로 불안에 떨었다. 
한참만에 돌아온 친구의 얼굴이 눈물 범벅이다. 이유인 즉슨, 화장실로 끌려가
짐이 너무 커서 추가 비용을 내지 않고서는 통과시켜줄 수 없다고 협박을 당해
주머니에서 잡히는 대로 100 달러쯤을 집어주고 나왔단다. 이런 황당한일이...
나중에 언니에게 들으니 공항을 마피아가 점령했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그런 일이 가끔 있나본데, 비행기 타기 전에 체크했다고 강하게 나가야 한단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 둘이 어리버리 서 있었으니, 만만하게 딱! 걸린거다.

아직 무언가 삐그덕거리는 것 같은, 불안하고 낯선 곳에서의 첫 사건.
러시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