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러시아

아파트와 다차

나무두그루 2011. 2. 27. 13:58







언니랑 모스크바에서 지냈던 아파트 단지다.
방학 때 결혼을 위해 귀국한 후배네 집을 우리를 위해 빌려 놓았다.
그 때 즈음 동양인들에게 위협적인 사건들이 발생해서,
현관을 잠그고도 긴 막대를 받쳐놓는 방법으로 문단속을 철저히 하곤 했다.
하지만, 그냥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늘 수수해보이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93년에만 해도 사회주의 포기 선언을 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서인지
모스크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심의 지급받은 아파트에서 지내며 일을 하러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도심 근교에 '다차'라는 주말 주택이 있어 그곳에 텃밭을 가꾸러 간다 한다.
우리나라에 지금 유행하는 전원주택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개념인 듯 한데,
주말이면 시골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벼운 농사를 짓고,
식구들의 부식을 해결하고 남는 농산물은 동네 시장에 내다 판다고 한다.
주말마다 작은 카트에 가득 실린 야채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자본주의가 되고, 러시아에서 맨 먼저 필요해진 물건이 '자물쇠'라고 했다.
그 전에는 내 것이라는 개념이 없이 모두들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늘 열어두고 다녔던 다차에 너도 나도 자물쇠를 채우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맘이 좋지 않았다.
이 곳 사람들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알 수 있을까?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의 낭만적인, 아니... 한참 세상 모르고 꿈을 꿀만한 대학 2학년생의 눈엔
그들이 잃게 될 삶의 여유와 부족하지만 함께 누리는 것에 대한 가치들이 그저 안타까웠고,
이제 막 피어나 앞으로 많은 시간 동안 다듬어져야 할 자본주의의 부작용들이 자꾸 거슬렸다.

그곳이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해서였는지, 유수한 문화를 자랑하는 러시아였기 때문인지,
퇴근 후 함께 손을 잡고 집주변의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공연을 보기위해 차려입고 나가는 머리 희끗한 노인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늘 바쁘고 문화생활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자주 떠올렸다. 
짧은 여행 기간 동안이지만 삶의 가치들이 무섭게 요동치는 변화의 땅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 그래서였을까? 남들 한참 취직 준비할 때, 제대로 준비해놓은 것도 없으면서
그냥 막연히 쳇바퀴 돌 듯 살아야할 것 같은 큰 기업들이 무조건 싫었던 것 같다.
게으른 자의 핑게지만, 덕택에 내 젊은 날은 해답도 없는 방황의 시간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