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잡다한 이야기

요즘 읽은 여행기

나무두그루 2010. 12. 26. 00:34

요 얼마동안 여행기만 읽고 있다.
일 할때는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놀 때는 게으름 피우느라 잡지 않았던 책을
그나마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는건, 아마 바람 냄새 나는 글이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한권씩 볼 땐 그러려니 별생각 없었는데 책 몇권을 몰아서 읽으며
여행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다니는구나... 싶은게 신기하다.
같은 곳을 다녀왔어도 작가의 생각과 성격이 글에 고스라니 드러난다.
작가와 마주앉아서 이야기 하면 어떤 느낌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을 듯.
책을 읽는 나도 더불어 즐겁거나, 혹은 불편하거나... 그렇게 그들의 여행에 따라 나섰다.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과 하얀 눈속을 걸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고프단 마음보다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다녀온 여행들을 정리해야겠단 맘이 먼저 드는건,
내가 속을 좀 차려서 인걸까? 한번쯤 내가 다녔던 길들을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책 몇 권 정리해본다.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
양학용, 김향미/예담



따뜻하다. 제목대로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이다.
두 부부가 일상을 접고, 3년 남짓 세상을 돌아다니며 적은 글은
어떤 구체적인 정보보다, 생동감있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둘이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감칠나는 글발로 재밌게 풀어놓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사람들과 부대끼며 따뜻한 세상을 꿈꿨을
두사람의 세상살이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럽다. 나도 복잡한 일상을 접고, 가족과 함께 훌쩍 떠나는 날이 올까?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2
김남희/미래인



평범하다. 여행기를 꼼꼼히 적은 작가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정도?
교보문고에서 책을 힐끔 넘겨 보고 예쁜 길 사진에 반해서 산 책인데,
책을 읽고는 아... 여행기를 한 네뎃권 쓰면 직업을 여행가라고 칭할 수 있나보다 싶었다.
작가가 쓴 글들 표지를 살펴보니 4권까지는 '소심하고 겁많고... 여자가 혼자떠나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5권째부턴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이란 말로 바뀌어 뭔가 전문가스러운 뉘앙스가 묻어난다.

1권은 좀 실망했고, 2권은 그럭저럭 재밌게 읽었다.
난 뭔가 그나라에 퐁 빠져서 허우적대는 좀 더 깊이있는 무언가를 기대했었나보다.
몇 년씩 살아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많은 시간을 두고 헤매 본 이들이 전해주는 어떤 것.
실은 2권씩이나 한나라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참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다녔을텐데,
계획 된 장소와 정해진 시간 동안 쫓기며 방방거린 느낌이 그냥 우리네 여행과 비슷했달까?
2권의 시코쿠 천년의 옛길을 걸은 순례여행은 그런 부분에서 조금 오히려 여유로웠던거 같다.
아무튼, 바쁜 여행을 계속해서 계획하고 글로 적어간다는 사실만은 대단하지 싶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문학동네



불편했다. 너무 잘난 여자가 휙 갈려 내려간 글을 읽는 느낌이랄까.
미술사가가 적은 유럽의 미술작품 등에 대한 품평과 일상 소고들을 모아놓은 책.
몇년 전이면 좀 더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을련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조금 더 따뜻한 감성을 원하고 있나보다. 
최영미 자신에 대한 글이 가끔은 너무 잘난채로, 아니면 너무 시니컬하게 느껴지며
나를 조금씩 긁는 것 같은 불편함을 주는 건 이글이 나랑은 맞는 코드가 아니라는 거겠지.
아님, 반대로 내 컴플렉스를 건드리는건가? ㅎ 좀 더 뭔가 능력있게 살아야한다는 각성?


홋카이도 보통열차
오지은/북노마드



사랑스럽다.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훌쩍 읽어버렸다.
홋카이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기차타며 먹은 도시락외에는.
그냥 기차를 타고, 혼자만의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맛난거 먹고
아... 이렇게 그냥 기차타는 것만을 목적으로 여행을 할 수도 있구나 싶다.
그냥 하루하루 일기를 쓰 듯, 아기자기한 작은 감성들을 쭉 풀어놓았다.
작가가 싱어송라이터라는데, 이 글을 읽고 노래를 찾아 몇구절 들어봤더니,
그래... 이런 노래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젊은이의 풋풋한 고민이 참 예쁘게 묻어나는 글이다.


황홀한 여행
박종호/웅진지식하우스



~holic이란 이런거구나 싶은 책.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가 풍월당엘 데려가 주셔서
박종호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첨 알았었다.
정신과 의사면서 음악과 여행이라는 고급스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 싶었고,
머리글에 '지금 당장 떠나라'는 구절을 보고는 핏! 돈있고 편하니까 그렇지 싶어
조금은 삐딱한 맘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가 보여주는 이탈리아에 폭 빠져버렸다. 
이탈리아와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가봤던 곳도, 못가본 곳도 내가 본 것과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한번쯤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