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잡다한 이야기

'생태'라는 이름의 아이러니

나무두그루 2013. 11. 4. 01:16

 

보성에 '봇재'라는 언덕이 있다.

 

차로 휙~ 지나쳐 갈 평범한 굽이길이지만, 보성차밭을 향하고 있는 설렘의 여정이 있는 곳이다.

 

 

몇년 전, 이 언덕을 끼고 있는 대지에 '보성녹차생태공원'을 계획하는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안은 낙선을 했지만 선후배들과 고민을 함께했던 시간은 맘 한켠에 남아있다.

 

무엇보다 찬바람을 맞으며 언덕 사이사이를 거닐며 이 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방방거렸고,

 

이곳에서 자리잡은 나무, 평범하지만 소박한 풍경, 좁은 사이길 하나라도

 

개발이란 이름으로 그 터전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의미를 부여해주려 노력했었다. 

 

쨘!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모두 함께 가려는 노력, 그것이 생태....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오랜만에 그 길을 지나게 되었다.

 

봇재언덕을 차로 스치며 무심코 바라다 본 그 언덕위에 새로 들어설 건물이 공사중이었다.

 

나즈막한 언덕이 무거워보이게 규모가 있네...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누렇게 벌거벗은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아~! 다 밀어버렸구나.... !

 

잘 모르겠다. 생태를 모티브로 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해, 원래의 것들은 그냥 없애버려도 되는 것이었는지.

 

눈에 띄는 화려함도 깊은 역사도 없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손이 가는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겠지만,

 

잠시나마 이곳에 애정을 주었던 나는... 슬펐다. 평범함이 비범함이 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개발이 아프다.

 

 

 

 

* 2009년 봇재와 작업의 일부.

 1. 대지 사진

 2. 대지 분석

 3. 계획 후 지도

  계획설계와 실제 시공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만약 우리가 되었더라도 이 곳이 살아남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실현되지 않은 계획은 그저 생각안에 존재하는 이상이기에, 그리움으로 추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