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잡다한 이야기

문화재 공사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

나무두그루 2011. 2. 20. 22:57

현장일을 너무도 하고 싶었던 멋모르던 시절에도
문화재를 보수한다는 것이 이상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던거 같다.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꼼꼼하게 검토해서, 건물에 대한 진실성이 지켜졌음 했다.
언젠가 나에게 남자들의 거친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왔을 때,
"여성의 섬세함이 가져다 주는 장점이 있을거라고... 쉽게 넘어가는 디테일에 더 집중하겠다" 고 했다.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아서, 무언가 하고픈 열정인지 고집인지 알 수없는 내 기운에 쉽게 지치곤 했었다.

여전히 많이 헤매고, 여전히 게으르고 부족하지만, 얼마만한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준 어떤 것.
문화재를 보수한다는 거창한 명분하에 행해지는 그 어떤 행위들 - 그것이 좋던 나쁘던 간에 -
그 자체가 그냥 우리시대의 문화라는 것. 딱 그 정도의 수준에 우리가 서있는 거라고...
'원형복원'을 이야기하면서도, 공기는 맞춰야하고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도 안되고
문화재를 만지는 데 왠지 기계공구는 좀 안써줘야될 것 같고, 그럴싸하게 보여야 되고,
그러면서도 공사가 어디에 초점이 있는지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 늘 잊어버리는...
그 정도 수준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우리의 문화재들이 우리 시대의 옷을 다시 입는다.

요 얼마간 첨으로 수리공사 보고서를 쓰는 일에 어떤 부분 참여했다.
일은 조직에서 단계를 밟아 배워야하는 것인데, 난 어설프게 늘 몸으로 떼워 하는 것 같다.
일 한참 해야하는 젊은 날 방황하고 놀았던 과보를 받는 것처럼, 모든 일이 내 나이만큼이나 무겁다... ;;

현장에서도, 설계사무소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여러 면들에 대해 보고서를 쓰며 많은 생각을 했다.
모든 걸 이해해도 절대로 양보하지 말아야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건 공사 기록에 관한 것이라고.
건물은 달라진다. 목재도 기와도 수명이 있으니 때가 되면 해체를 하고 부재를 갈고 생명을 유지시킨다.
건물을 만지는 장인들의 기술도, 문화재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고민하는 수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현장에서 잘 할 수 있다고 노력하겠다고 큰 소리쳤던 젊은 치기도, 일에 닥치면 상황에 대한 눈치를 본다. 
모든 것이 하나의 건물에 대한 '역사'로 시간에 따라 흐르겠지만, 이에 대한 기록만은 정확해야 될 것 같다.
후세들이 고민할 때, 예초에 우리가 물려받았던 모습은 어떠했었는지 알려줘야할 의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기록들은 왜곡된다. 매우 안타깝게도.
발주처, 시공자, 설계자, 기록하는 사람들의 입장차에 의해. 그리고 부족한 관심에 의해.
매번 집을 고치고 그럴싸한 보고서가 나오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사실과 조금 다를 수 있다.
그 공사비와 기간안에 다루기엔 너무 복잡한 일이라 슬쩍 사라져버린 어떤 부분에 대한 이야기나
부족하거나 힘들었던 공사 내용에 대한 부분은 스스로의 검열과 누군가의 의견으로 지워진다. 

도면이나 평범한 공사에 관한 보고서가 기록과 연구를 위해 그 때 그때 나오더라도,
그 깊은 속이야기들을 함께 적어 보관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공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현장 사람들이 할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술 할 수 있는 기록원을 한명씩 현장에 파견시키는 건 어떨까. 
조선시대에 왕의 기록을 절대 당대에는 열어 볼 수 없게 만든 것처럼 조건을 붙여서.

개개인의 치적과 어설픈 가치판단에 묻혀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재가 그렇게 원형을 잃어간다. 
문화재를 다루는 그 누구도, 비판하기 좋아하는 그 어떤 이도,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속상하고 무기력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