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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 여행에 대한 오래된 기억

'처음'이란 언제나 특별하다. 기다림과 서툼, 낯선 경험에서 오는 강렬한 기억. '러시아'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꺼내보기에 새삼스러울 만큼 오래되어 작은 기억들은 시간에 묻혔지만, 그곳은 세세한 설명을 필요치않는 하나의 이미지처럼 강하게 남아있다. 여행을 기다리던 설레임은 이제, 돌이켜 곱씹어보고픈 그리움이 되었다. 요즘 시간이 남아돌자, 갑자기 그때의 시간들이 머리속을 훼집고 다닌다. 게으름에 점령당하지 않는다면, 몇몇 이야기들을 적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옛 흑백사진을 훑어보듯, 너무 많이 달라졌을 그곳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자본주의에 밀려 소련이 해체되고, TV에선 늘상 가난한 그곳을 비추었다. 수급이 불안한지 먹을 것을 사기위해 몇 미터씩 줄을 서는 배고픈 사람들. 도심의 여러 사건들... 그..

유럽/러시아 2011.02.25

문화재 공사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

현장일을 너무도 하고 싶었던 멋모르던 시절에도 문화재를 보수한다는 것이 이상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던거 같다.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꼼꼼하게 검토해서, 건물에 대한 진실성이 지켜졌음 했다. 언젠가 나에게 남자들의 거친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왔을 때, "여성의 섬세함이 가져다 주는 장점이 있을거라고... 쉽게 넘어가는 디테일에 더 집중하겠다" 고 했다.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아서, 무언가 하고픈 열정인지 고집인지 알 수없는 내 기운에 쉽게 지치곤 했었다. 여전히 많이 헤매고, 여전히 게으르고 부족하지만, 얼마만한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준 어떤 것. 문화재를 보수한다는 거창한 명분하에 행해지는 그 어떤 행위들 - 그것이 좋던 나쁘던 간에 - 그 자체가 그냥 우리시대의 문화라는 것...

110101 별헤는 밤, 송암천문대

찬바람이 오히려 주변을 명료하게 하는 것 같은 저녁.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봐 꽁꽁 싸매고 천문대를 찾았다. 송암천문대는 편하다. 도심에서 가깝고, 케이블카가 있어 관측소까지 쉽게 갈 수 있다. 몇해전 친구와 깜깜한 산길을 차로 오르며 무서움에 떨었던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와는 사뭇 다른 편안한 서비스 공간이다. 표를 끊고 아랫 단지의 플라네타리움에서 가벼운 영상물을 구경했다. 가벼운 우주이야기와 우주인에 관한 영상이었는데 한번쯤은 볼만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꼭대기에 있는 천문대에 올라 겨울철 몇몇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별구경도 했다. 최근에 1개의 띠가 사라져 1개의 띠만 보인다는 목성이랑 플레이아데스 성단, 두개의 별이 서로 다른 색을 띈다는 알마크 등 천체 망원경을 통해 몇 개의 별들을 보았는..

국내여행/경기 2011.01.19

110101 서삼릉 보리밥

천문대 가는길,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았다. 맛집 검색을 하다가 꼭 먹어봐야겠다고 우겨서 간 곳. 큰길에서 눈도 안녹은 좁은 길로 한참을 들어가야 해서 맛없으면 어떻게하지... 약간 걱정도 되었다. 신랑이랑 동생이랑 3명이서, 보리밥 2인분, 쭈꾸미볶음, 코다리 구이를 시켜먹고 맛난 반찬 소진하느라 밥도 한그릇 더 먹었다. 소박하게 차려져 나오는 나물 반찬이랑 음식들로 완전 즐거웠다. (수제비도 맛보고 싶었는데 2인분 이상 시켜야된다해서 아쉬웠다.) 보리밥은 나오자마자 허기진 배를 채우기위해 급하게 비벼서 맛보느라 사진도 못찍었다. 특히!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코다리구이가 넘 맛있었다. * 주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57 031-963-5694, 031-968-5694 계획에..

국내여행/경기 2011.01.19

110101 새해첫날, 눈덮힌 진관사

2011년이 밝아버렸다. 꼬박꼬박 한해의 마지막날은 TV 가요대전과 함께 허망하게 가고, 적당한 늦잠으로 시작하는 새해 아침은 참 부지런히도 온다. 느즈막에 집에 온 동생과 함께 오후엔 무얼할까 고민하다 신랑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는 별을 보러가자고 했다. 장흥 천문대에 가는 도중에 진관사에도 함 들려가자고 한다. 회사서 진관사 프로젝트는 내가 하다가 신랑이 끝을 낸 과제였다. 나름 의미있는 곳이어서 새해의 첫여행지로도 재격이다 싶다. 오랜만에 진관사에 가니, 빨리 바뀌었음 하는건 아직도 그대로다. 그래도 한두해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 어울리지 않는 요사채와 여러부분을 정비해야하지만, 묵은 세월 느낌나는 정감있는 절로 남았으면 좋겠다. 일주문. 지대를 좀 높혀 석교를 새로놓고, 주변 정리도 했다. 뭣..

국내여행/서울 2011.01.15

요즘 읽은 여행기

요 얼마동안 여행기만 읽고 있다. 일 할때는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놀 때는 게으름 피우느라 잡지 않았던 책을 그나마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는건, 아마 바람 냄새 나는 글이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한권씩 볼 땐 그러려니 별생각 없었는데 책 몇권을 몰아서 읽으며 여행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다니는구나... 싶은게 신기하다. 같은 곳을 다녀왔어도 작가의 생각과 성격이 글에 고스라니 드러난다. 작가와 마주앉아서 이야기 하면 어떤 느낌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을 듯. 책을 읽는 나도 더불어 즐겁거나, 혹은 불편하거나... 그렇게 그들의 여행에 따라 나섰다.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과 하얀 눈속을 걸으며 행복한 여행을 하고프단 마음보다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다녀온 여행들을 정리해야겠단 맘..

100805 맹씨행단의 은행나무

조경... 나무를 심는 일은 시간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마곡사 중정에 보리수 나무를 빼곡히 그려온 건축가의 계획을 보고, 한 스님께서 보리수 나무가 얼마나 아름드리로 자라는데... 하셨단다. 좁은 중정에서 서로 부대끼며 크지 못할 나무의 생명에 안타까우셨겠지... 맹선생께서 집에 은행나무를 심고, 주변에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드셨단다. 공부하는 공간.은행나무 아래서 배움을 배푼 공자의 뜻을 함께 하고 싶었나보다. 600년 이상의 시간이 키운 이 나무가 그 청정한 뜻을 후대로 전하는것 같다. 맹씨행단 진입공간. 실은 근처에서 마을로 찾아들어오는 것도 헤맸고, 다와서 차를 대놓고서도 헤맸다. 축대위 은행나무를 보고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그냥 집한채 덩그라니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후손들이 사는 살림집..

국내여행/충남 2010.08.18

100724 연꽃 방죽을 걷다.

춘장대 해수욕장 방향으로 동백정을 찾아가던 길, 주항저수지 근처에 화려하게 핀 연꽃들을 보고 차를 세웠다. 마을에서 일부러 조성한 듯, 길을 조심해 건너라는 표지판도 세워놓았다. 같은 모양으로 세워지는 투박한 원두막도 흙길과 어울어져 그럴싸하고, 방죽마다 다른 색깔로 피어나는 연꽃들과 어우러진 소박한 탐방로도 정겹다.

국내여행/충남 2010.08.08

100724 붉은 광장에 외로이 선, 비인 5층 석탑

정림사탑을 닮은... 그러나 뭔가 독특한 느낌의 탑이다. 석가탑의 완벽한 비례가 일정 시기를 지나면 흐트러지며 자유로운 경향이 나타나듯이 이녀석도 정림사탑의 아름다운 비례를 깨고 색다른 비례를 가지고 구축되었다. 그러나, 정림사의 비례가 깨졌다고 하여 무언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여인의 잘록한 허리같은 탑신으로 인해, 커보이는 옥개석의 지붕선이 오히려 날아갈듯 경쾌하다. 마치, 비례와 균형을 깨고 그려진 파르미치아노의 목이 긴 성모가 지나치게 우아해보이듯이. 뭔가 외롭고 서사적인, 해질녘 서해안의 느낌을 닮은 이 탑은 그러나, 지나치게 편의 위주의 주변정비로 인해 그 느낌을 반감시키고 있다.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서... 혹은 내리쐬는 햇살이 너무 강해서... 란 이유를 달더라도 붉은 황토포..

국내여행/충남 2010.07.29

100724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 무창포

해가 지는 느즈막에 검은 속살을 드러내고있는 바다를 찾았다. 썰물과 함께 빠져나간 북적이던 인파대신 갯벌에 쏟아지는 은빛 햇살과 함께 찬기운이 깃들기 시작한 여름 해수욕장에서 가족들과 물놀이를 즐겼다. 이름하여 땅집고 헤엄치기!!! 미끈한 뻘밭에 물컹하며 미끄러지는 감촉을 느끼며 종종 발끝에 채이는 굴껍질이 붙은 무더기를 조심스레 피해가며, 손을 바닥에 집고 첨벙거리며 어설픈 물놀이로 짧은 시간을 보냈다. 투명하고 아주 조그마한 게의 새끼들이 온몸을 타고 올라 물을 벗어나기 전 한참을 털어내며 뒷처리를 해야했다. 해수욕장으로는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그 해변에 수많은 생명들을 느끼며, 해가 저물고, 노을빛이 조금 무겁고 신비로운 색으로 가라앉을때까지 그렇게, 참 오랜만에 가족들과 엉뚱한 해수욕을 즐겼다. ..

국내여행/충남 2010.07.27